“우리 제주는 오는 7월 어느 날, 전체 운행 차량 중 전기차 비율이 10%를 넘게 될 것입니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지난 9일 제주신화역사공원에서 열린 ‘제12회 국제e모빌리티엑스포’(조직위원장 김대환) 개막식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주가 한국에서 전기차 보급률이 가장 높은 지역이라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실제로 지난 4월 말 기준, 제주도에서 운행되는 차량은 총 41만 2,892대이고, 이 중 전기차는 4만 267대다. 전기차 비율은 9.8%로, 10대 중 1대가 전기차인 셈이다. 관광객들이 체감하는 비율은 이보다 더 높을지도 모른다. 카카오택시를 호출하면 대부분 전기차가 달려오고, 렌터카도 상당수가 전기차다. 연료비가 저렴한 데다, 전기차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 택시회사나 개인택시 기사들도 빠르게 전기차로 전환하고 있다.
기자는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또 제1회 엑스포를 주최한 국제전기차엑스포(IEVE) 창립 멤버로서, 지난 12년간 엑스포의 성장 과정을 지켜봐 왔다. 이 행사는 단순히 전기차 기술을 소개하는 박람회를 넘어서,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놓고 함께 고민하는 국제 공론장으로 진화해왔다.
엑스포는 지난해부터 명칭을 ‘국제전기차엑스포’에서 ‘국제e모빌리티엑스포’로 바꿨다. 시대 흐름을 반영한 변화였다. 장소도 기존 제주국제컨벤션센터(JICC)에서 제주 신화역사공원으로 옮겨 열렸다. 이번 행사에서는 전기차뿐만 아니라 전기선박, 배터리 재활용, V2G(Vehicle to Grid) 등 보다 복합적인 모빌리티 생태계가 조명됐다.
엑스포의 시작은 2014년. 당시만 해도 전기차는 ‘골프 카트’ 수준의 인식에 머물렀다. 그러나 ‘탄소 없는 섬(Carbon-Free Island)’을 향한 제주도의 비전 아래, 정부 주도가 아닌 민·관·학 협력형 국제행사로 출범했다. 지금 제주는 서울을 포함한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전기차 일상화를 가장 앞서 이룬 지역이며, 엑스포는 그 성과의 상징이 되고 있다.
그러나 전기차 보급만으로는 부족하다. 충전 인프라, 재생에너지 전력망, 배터리 순환 시스템 등 에너지 전환을 위한 기반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제주도는 이미 분산에너지 특구로 지정되어 V2G 시스템 도입을 앞두고 있다. 재생에너지로 충전한 전기를 저장하고, 다시 송전망에 공급하는 이 시스템은 미래 전력 구조의 핵심이다.
올해 엑스포에서 주목할 점은 e모빌리티의 영역이 도로를 넘어 해상과 공중으로 확장됐다는 사실이다. 전기선박 관련 전시와 포럼이 열렸고, 도심항공교통(UAM)과 드론 기술에 대한 국내외 업계의 관심도 높았다. 특히 중국 기업들은 기술 교류에 강한 의지를 보이며 한국과의 협력을 강조했다.
배터리 분야는 여전히 가장 뜨거운 주제였다. 삼성전기의 대표를 지낸 박종우 박사가 좌장을 맡은 배터리 포럼에는 한국, 중국, 일본, 미국의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CATL, BYD, 미쓰비시, Sila, LG 등 글로벌 강자들이 모여 차세대 배터리 소재, 재활용, 안전성을 놓고 진지한 논의가 이어졌다. 단순 용량 경쟁을 넘어선, 배터리 기술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이번 행사에는 대학생 자율주행 경진대회와 청소년 논문대회도 열렸다. 신화역사공원 인근의 국제학교 학생들이 다수 참여했으며, 제주대학교 이개명 전기공학과 교수는 “AI 딥페이크를 이미지와 음성으로 판별하는 방법을 제안한 한 국제고 학생의 논문이 특히 탁월했다”고 평가했다.
흥미로운 점은 중국의 적극적인 참여였다. 포럼에서 중국 측 관계자들은 테슬라를 제친 자국 전기차 판매 실적을 근거로 기술력과 정책적 자신감을 내보였다. 도심항공교통, 드론 활용, 그리고 기술 표준화 분야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희망하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미국 주도의 기술표준 체계를 넘어서려는 전략이 엿보였다.
이번 엑스포를 보며 아쉬운 점도 있었다. 제주도가 다른 지역보다 앞서 발표한 ‘2035 탄소중립’ 비전이 도민들의 실천과 연결되지 못하고 있으며, 행정 내부에서도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전기차 보급률만으로는 부족하다. 제주가 진정한 에너지 전환 모델로 자리매김하려면, 전기차 보급과 함께 인프라와 제도적 연계가 뒤따라야 한다.
한편, 제주를 대표하는 국제행사로는 정부 주도의 ‘제주포럼’과 민간 중심의 ‘e모빌리티엑스포’가 있다. 제주포럼은 외교·안보 중심의 정치 포럼이고, e모빌리티엑스포는 기술과 산업, 그리고 지속가능성 중심의 비즈니스 포럼이다. 그러나 관이 주도하는 행사에만 가치를 부여하는 관행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e모빌리티엑스포는 제주도민의 삶과 자존심을 키울 수 있는 행사이며, 제주다움과 산업 생태계의 창의성을 함께 키워가는 공간이다.
김수종 칼럼니스트·전 한국일보 주필
제주도는 올해 이 행사에 5억 원을 지원했다. 적지 않은 예산이다. 하지만 개최 장소 변경, 정치 일정과의 충돌 등으로 행사 준비에 어려움이 많았다. 조직위원장 김대환씨는 “탄핵 정국과 일정 변경으로 제주컨벤션센터를 확보하지 못해 여러모로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제주도정과 조직위가 협력하여 내년 제13회 엑스포는 더욱 내실 있고 국제적인 행사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해 본다. / 김수종 칼럼니스트‧전 한국일보 주필